이런 날들도 있어야지.
by 아암
she's climbing!


발판, 왕통굽, 자연광.
by 아암 | 2009/11/17 13:09 | 트랙백 | 덧글(1)
어서옵셔


그는 시인으로 남았어야 해, 라고 통탄하던 글쟁이가 있었다. 나 역시 장정일의 소설보다는 시를 오만배 가량 더 좋아했으니 대 찬성이었다. 맞아, 시를 계속 썼어야 해.

함축적이고 은유적인 한 줄로 쿨하게 끝내며 여운과 해석의 여지를 남길 수 있을 싯구가 소설 속 몇 페이지의 문장으로 적나라하게 까발려진다. 원래 온화하고 순한 사람이 아니다. 역시 미디어는 자극적인 것만을 취했다.

기형도는 무겁고 서러웠다. 황지우는 슬프고 안타까웠다. 김수영은 아팠다. 20대 초반의 내가 찾아낸 균형이 장정일이었다. "나"의 균형이다. 나는 문학도 모르고 시도 모른다. 계보도, 사조도, 경향도, 아무것도 모른다. 어설프게 책을 몇권 씹어먹은 것 뿐이지만, 그런 것쯤 아무것도 아니다.

오랜만에 장편이 나왔단다. 잠깐 만난 지인이 생일선물도 준비못해서.. 쭈볏거리기에 동네 서점으로 데려가 서점 직원에게 장정일 신간 주세요, 라고 주문하고 지인이 돈을 냈다. 지인은 다행히도 내가 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오래전에 빌려줬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솔직히 잘 모르겠던데, 라고 목덜미를 긁적이던 게 기억이 나서 잠깐 웃었다. 그니까. "내" 기준이라고 했잖아.


..그는 시인으로 남았어야 해, 라고 통탄하던 글쟁이가 있었다... 십년이 지났으니 나도 조금은 철이 들어야지. 아마도 시인은 시를 그만 쓰고 싶었나 보다. 그래서 소설도 한참 쓰다가, 독서일기도 쓰시고, 인문학도 쓰시고, 뭔가 이것저것 쓰시다가 다시 소설을 쓰셨나보다. 행복해 보이셔서 다행이다.
by 아암 | 2009/11/16 20:56 | 트랙백 | 덧글(0)
또.



일개미, 꿀벌처럼 일하다가 주말이 되면 경조사가 있다. 경조사가 끝나면 반가운 혹은 보고싶은 사람들과의 약속이 있다. 달린다. 새벽이슬을 맞으며 집에 기어들어온다. 다시 일개미, 꿀벌처럼 일하다가....무한 반복.

주말에 남자친구와 단둘이 느긋하게 만나본게 언젠지도 모르겠다. 작년에 서로 조금 게으름을 피우다가 단풍 나들이를 못가 일년 내내 잊을만하면 궁시렁댔는데 맙소사, 올해 가을도 마찬가지로 지나가버리고 말았다. 왜이렇게들 결혼을 하고, 왜이렇게들 출산을 하고, 애들은 왜이렇게들 한살이 되는지, 혼인률이나 출산률이 저조하다는 보도는 다 개소리같다. 가깝고 소중한 사람이라면, 결혼을 네번쯤 하고 출산을 일곱번쯤 한들, 지갑이 좀 얇아지긴 하겠지만 깊은 곳에서 복식호흡을 끌어내어 진정 축하할테지만.. 나이 서른쯤 된 인간이라면 이해해주겠지. 어제 엄마와 대화중, 최초로 내입에서 "수지 타산"이니 "손익분기"니 하는 말이 나왔으면. 뭐 막장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악 싱글녀가 호구로구나 절규한게 몇년째이던가. "이제는 추수해야 할 때"라는 엄마의 콧노래가 더이상 크게 섬뜩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하얗게 태워 재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모자랐나보다. 진이 다 빠져 더 짜낼것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나보다. 제일 불쌍한건 노예노동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는 남자친구. 자신있게 "아놔 돈은 내가 충분히 벌테니 넌 그냥 하고싶은거 하면서 용돈이나 벌어"라고 쿨하게 말해주고 싶다. 진정.

by 아암 | 2009/11/09 23:16 | 트랙백 | 덧글(0)
threshold


사람마다 계절의 전환을 감지하거나 경계를 짓는 기준이 있을것이다. 모름지기 겨울이란 집을 나서는 이른아침 하얀 입김이 대표적이랄 수 있겠는데. 사랑하는 가을은 점점 짧아지는데다 11월에 영하의 기온이라니, 미처 정리못한 겨울옷을 뒤져 네다섯 겹을 껴입고 출근길에 나섰다. 작년에 선물받아 코트안에 디폴트로 껴입는 니트가디건을 입고 머플러를 싸매고 유리문을 여니 입김까지 가세한다. 그래도 왠지 아직 생일도 지나지 않았고 하늘공원의 억새나 삼청각의 단풍도 보지 못했는데, 게다가 수능도 남은 이 시점에 겨울을 인정하기에는 억울하기까지 하다. When October goes도 한번도 못들었단 말이다.

그러던 참에 버스에 올라타신 단정한 대머리 아저씨의 코트에서 나프탈렌 냄새가 솔솔 풍겨왔다. 아아, 부인은 올해 봄에 코트를 옷장 안쪽에 치우실때 좀약을 함께 넣으셨구나, 날씨가 추워져 급하게 코트를 꺼내주셨구나, 아마도 아저씨는 미리 좀 꺼내놓지 그랬냐며 몇마디쯤 투덜거렸을 수도 있고, 그나저나 국은 왜이렇게 짜냐며 아저씨가 반찬 타박이라도 했다면 심한 경우 아침부터 부부싸움을 했을수도 있다.  남의 가정사까지 상상하며 나는 조금의 억울함이 가시게 되었다. 약간은 미소까지 지어졌다. 처음보는 대머리 아저씨가 조금은 귀여워보이기까지 했다.

너무 바쁘고 피곤했다. 이번 주말에는 꼭 나들이를 나가야지. 그리고는 다행히 기분이 좋아졌다.

by 아암 | 2009/11/03 11:21 | 트랙백 | 덧글(2)
시련

꽤나 맘고생을 하고 있다. 굳이 싸움을 걸지도 적극적으로 받아주지도 않는 타입이라 싫으면 그냥 실을 끊어버리자는 게 나름의 노 잼, 노 스트레스 잔기술이었는데 30년 인생에 한번 세미콜론을 찍고 골목을 꺾어 돌아가니 요따위 잔기술로는 디펜스도 오펜스도 어려운 상대와 상황의 등장이다. - 그래서 이런 만연체가 등장하는 것이다.

시련이 인간에게 미치는 악영향 중 으뜸이라면, 멍때리고 졸다가 내릴곳을 지나치듯 자성을 건너뛰고 자학에서 꽉 막혀버리는 것. 더 최악이라면, 소중하고 아깝고 이뻐 미쳐버릴 사람들에게 투덜대 그사람들을 걱정하게 만드는 것. 젠장 나빠, 나쁘단 말이다.
by 아암 | 2009/10/07 21:25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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